A Quiet Companion
Ways to Crack the Bl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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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ys to Crack the Blues
copyright © warm gray and blue, 2025
글
김현경
박수진
박효진
오종길
박수진
박효진
오종길
편집오종길
영문 표기박효진
영문 검수신유보
표지 디자인박수진
내지 디자인김현경
1쇄 발행2025년 5월 2일
발행웜그레이앤블루
이메일warmgrayandblue@gmail.com
웹사이트warmgrayand.blue
주소서울특별시 성북구
보문동5가 69-1, 1층
보문동5가 69-1, 1층
Written by
Hyo Jin Park
Su Jin Park
Jong-gil Oh
Vanessa Kim
Su Jin Park
Jong-gil Oh
Vanessa Kim
Edited byJong-gil Oh
English translation byHyo Jin Park
translation review byYou Boh Shin
cover design bySu Jin Park
page design byVanessa Kim
published bywarm gray and blue
emailwarmgrayandblue@gmail.com
websitewarmgrayand.blue
address1F, 69-1, Bomundong5-ga,
Seoungbuk-gu, Seoul, Republic of Korea
Seoungbuk-gu, Seoul, Republic of Korea
Words
we sha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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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사람의 대화 — p.237–253
‘우울에 균열 내기’라는 주제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수진 우리가 처음 카페에서 만나 어떤 주제로 아트북을 제작할지 이야기했죠. 대화를 나누다 보니 우리들의 공통 관심사가 정신 건강이란 사실을 알게 됐잖아요.
효진 정신 건강에 대해, 우울에 대해, 나아가 나를 ‘보호’하는 일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그때 수진이 했던 말들이 ‘고개 들기’라는 글에 쓰여있어서 원고를 읽다 보니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생각이 나더라고요.
수진 어쩌다 이런 공통점이 있는 사람들이 모였는지도 참 신기해요.
현경 처음에 내가 요즘의 관심사로 대화를 이끌었을 때 과반수가 운동이나 산책 등 일상 속 정신 건강을 지키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를 했어요. 사실 그래서 주제를 정할 때부터 오늘의 결과물까지가 제 나름 모두 짜놓은 설계였습니다. 후후.
수진 계획이 다 있었군요. 처음부터 우리가 ‘균열 내기’로 주제를 정하지는 않았고, 계속 고민을 하다가 ‘균열’이라는 말을 택한 것 같아. 작업하는 내내 많은 표현들을 썼어요. 탐험, 혹은 보호라는 단어도 있었고. 우울에 빠져있는 분들에게는 이런 말들조차 거창하게 느껴질 거 같아서 적절한 표현을 찾다가 균열이라는 단어를 쓰게 됐죠.
효진 우울에 빠져있는 입장에서 무슨 조언이든 폭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생각이 지금의 제목으로 이끌었나 봐요.
수진 그런 의미에서 원고의 레벨도 나눴잖아요. 별 하나, 별 둘, 별 셋까지 단계별로 읽을 수 있게. 쉽게 시작할 수 있는 행동에서부터 품을 들여야 하는 것까지. 글의 소제목을 ‘~하자’라는 문장에서 ‘~하기’로 바꾼 것도 그런 맥락에서였죠. 부담을 주지 않도록. 저는 원고를 쓸 때도 계속 의식했던 거 같아요. 나는 이랬다, 나는 무엇을 했다, 하는 식으로 우리가 직접 행한 행동들이지만 이걸 읽는 사람들이 실천에 옮기기까지는 그들의 몫이기 때문에 이와 같은 방식으로 풀어낸 것이 좋았어요.
종길 다들 왜 이렇게 기억력이 이렇게 좋아요? 듣다 보니 그간의 대화들이 떠오르네요.
수진 이야기하다 보면 기억이 잘 나는 것 같아요. 못 하고 지내다가.
각자 우울이라는 감정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나요?
현경 오랜 친구죠. 내게 우울은 반려 병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나 자신의 오랜 간병인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언제나 나의 정신을, 정신 건강을 케어하는 방향으로 삶의 모든 선택들을 하고 있고요.
효진 제게는 엄청 징글징글한 관계랄까요. 지금도 꾸준히 약을 먹고 있고 물리적인 치료도 받고 있어서 정말 믿고 그 과정이 쉽지도 않거든요. 치료를 받은 지 거의 7,8년이 되어 가니까 ‘아, 우울증이나 우울이라는 감정이 없었더라면, 내 감정과 나를 잘 알지 못했을 거다’라는 생각이 드는 거 있죠. 그전에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그저 앞으로만 나아갔던 것 같아요. 그런데 문제가 생기고 나서는 나 자신이나 한계, 범위 같은 것들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감사하죠.
현경 저도 생각해 보니, 우울이라는 늪에 빠지기 전에는 좀 오만했던 거 같아요. 오만한 사람. 그런데 그 후로는, 지금은 삶 자체에 꽤 겸손해진 것 같아요.
종길 수록된 글 중 ‘차근차근 생각하기’에 더 깊은 우울과 무력에 빠져들기 전에 멈춰야겠다는 내용이 있어요. 이 글을 쓸 때 무슨 생각을 했냐면, 나중에 내게 얼마나 좋은 감정을 가져다주려고 이러나였어요. 신은 인간에게 선물을 줄 때 시련이라는 포장지에 싸서 준다, 라는 말처럼 이런 부정적인 감정들이 내게 그만큼의 좋은 무언가를 가져다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거든요. 물론 그 상황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잖아요. 그러니 잠깐 멈추고 차근차근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보자는 거였죠.
효진 저도 공감하는 게, 우리가 우울을 겪었기 때문에 이 많은 ‘버튼’을 만들 수 있었던 거잖아요. 우울할 때 누를 수 있는 버튼들일요. 누군가는 우울할 때 무얼 해야 할지 모를 텐데 우리는 오래도록 겪으면서 그걸 알게 되었고, 이토록 많은 버튼들이 생겼죠. 나름의 노하우랄까.
수진 살면서 얻는 지식도 중요하지만 지혜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 있잖아요. 노하우라는 게 이런 지혜 아닐까. 이토록 멋진 지혜를 얻게 해준 것이 우울이니 미워할 수 없다, 그죠?
종길 애증의 관계네요. 그렇다면 우울이라는 벽을 넘어 변화한 게 있다면요?
수진 우울하기 전에는, 물론 지금도 그런 면이 있지만, 부정적인 감정과 말들을 잘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우울증과 불안 증세를 겪고 나서야 그걸 깨달았어요. 특히 나는 사람을 미워하는 감정이 들면 많이 힘들어했는데, 누군가를 미워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우울증이 오기 시작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사람을 이해하는 감정의 폭이 넓어진 것 같아요. 포용 능력이 생겼달까. 저 사람도 힘들었기 때문에 그랬겠구나, 하는 생각도 하고.
수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면이 있는데 배우 최강희 씨가 우울증으로 활동을 중단한 적 있어요. 어딘가에서 이런 말을 했어요.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 나는 우울한 사람들을 되게 좋아해. 내가 그랬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나쁘지 않고 그대로도 되게 좋다. 사랑스럽다고 말해주고 싶어. 나는 과거의 나를 생각하면 너무 사랑스러워. 그 순간엔 내가 제일 싫고 아무 쓸모없다고 그랬는데 너무 사랑스러워.”라고 말하는 장면이에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모두 관통하는 것 같아요. 그런 우울한 내 모습조차 끌어안을 수 있는 것처럼 타인도 끌어안을 수 있는 방식. 나만의 방식이 생긴 것 같아요. 안 좋은 감정 때문에 사랑에 대해 더 많이 배우는 것 같아요. 역설적으로.
효진 사람이 아파봐야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고, 포용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서로의 ‘우울에 균열 내는 법’을 보며 느낀 점이나 영향을 받은 점이 있나요?
효진 얼마 전 이런 얘길 현경과 나눈 적이 있는데, 현경은 관념적이고 큰 덩어리를 다루는 식으로 글을 쓴 반면, 저는 글은 보다 작고 세세하다는 차이에 대해서였어요. 두 사람의 행동반경이나 움직임의 크기가 달랐다는 점에서 재밌게 다가왔어요.
종길 원고를 모두 모아놓고 보니 그 부분이 재밌긴 했어요. 우리가 쓴 글을 보면 비슷한 게 꽤 있긴 해요. 그런데 비슷한 키워드를 가지고도 각자가 다르게 풀어내는 게 신기하기도 하면서 흥미로웠어요.
수진 저도 정말 비슷하거나 생각했어요. 그리고 사람을 일으키는 게 별것이 아니구나, 우리는 어쩌면 이미 알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도 했어요.
효진 나는 이걸 왜 몰랐지, 이런 방법도 있었구나 하는 것들도 많았어요. 감명 깊게 본 글 중 수진의 청경채 밑동을 보고 귀엽다고 생각하는 내용이 떠오르네요. 읽으면서 행복이란 작은 것에서부터 나오는구나 싶었거든요. 종길의 글 중에서는 ‘사랑하기’가 있는데 이걸 ‘Love’가 아니라 ‘Love to Live’로 옮겼거든요. 글의 내용을 관통하는 문장이라 생각해서 맘에 들어요.
종길 그 지점도 결과물로 봤을 때 좋았던 게, 책 제목을 어떤 결로 갈지 고민했잖아요. 영제도 직역하지 않고, 좀 부드럽고 재미있게 가자는 이야기를 나눴던 것처럼 글의 소제목도 모두 그런 방식으로 풀어낸 게 아주 맘에 들어요.
효진 영제는 전반적으로 각 글을 잘 포용하도록 애썼죠.
현경 우리들의 글을 함께 보면서 이 책이 사전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사람들이 쓴 방법이 나한테도 삶의 힌트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리고 내 걸 쓰면서 잊고 있던 것들이 많이 생각나서 기록하는 과정 자체가 큰 의미 있었던 것 같고요.
효진 저는 읽으면서 나는 지금 이걸 정말 실천하고 있나, 하는 생각도 해봤어요.
수진 이걸 실천하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꽤 건강해졌다는 뜻 아닐까요. 다른 행동들이 일상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새롭게 얹어진 행동도 있을 테니까요.
효진 혹시 요즘 새롭게 떠오르는 게 있나요? 저는 원래 없던 방법 중에 친구들을 많이 만나려고 노력하고 있거든요.
수진 그래서 우리가 만난 거지!
현경 앞에서 저는 스스로를 간병인이라 생각한다고 언급했듯이 최근에는 내게 좀 더 잘해주는 생각을 했어요.
수진 현경 글을 읽으면서 그런 게 많이 느껴졌어요, 나 자신에게 잘해주자는 다짐 같은.
현경 그래서 얼마 전에는 예쁜 그릇을 좀 샀어요. 수록된 ‘침구 바꾸기’의 내용과 일맥상통하는 행동이었죠.
수진 제가 쓴 ‘기둥 세우기’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는데 취향이 되는 것 같아요. 취향으로 주변을 꾸미는 것도 기둥 세우기에 속하는 거니까. 저는 요즘 무슨 일이 있어도 밤에 나가서 한 시간씩 걷고 뛰다 돌아오거든요. 거기에 추가된 게 ‘선녀 목욕’이라고, 최소 30분 정도 오래 샤워를 하는 거예요. 뜨거운 물로 푹 씻고 몸 구석구석을 마사지하는 시간.
효진 저는 요즘 밖에서 90%의 에너지를 쓰고 남은 10% 중에서 5%를 꼼꼼하게 씻는 데에, 5%는 폼롤러를 사용해 몸을 풀면서 스르륵 잠드는 데 써요. 폼롤러 위에서 친구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도 되짚고요.
수진 효진과 내가 요즘 잠자기 전 루틴이 비슷하네요. 나를 만지고 느껴보는 일. 일상에서 나를 만질 일이 사실 별로 없으니까.
종길 사실 저는 꽤 오래된 루틴이 하나 있는데, 5초 정도 소요되거든요. 뭐냐면, 잠들기 전에 나를 안아주고 내게 오늘 하루 고생했다고 말해주는 거예요. 내가 날 만져야지, 누가 날 만져주겠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자신 안에서 발견한 무언가가 있나요?
수진 나 잘 지나왔네, 하는 생각. 그래서 이런 걸 글로도 쓸 수 있네, 하는 생각.
종길 원고를 보면서 우리 다 되게 튼튼하다, 하는 생각을 했어요.
효진 안타까운 건 이만큼 나온 것 자체가 치열하게 아픈 시간을 겪었다는 증거라는 것. 이렇게나 많다는 게 슬프긴 했어요.
수진 눈에 보이는 상처라면 밴드라도 붙일 텐데. 아등바등 그 당시를 살아온 기록이죠.
효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던 것 같아요.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로 잠겨버릴 것 같으니까, 정말 치열하게 싸워온 흔적이라고 볼 수 있겠죠. 문득, 우리가 다들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드네요.
현경 예전에 누군가 나에게 우울한 글을 썼으면서 밖에서는, 인스타그램에서는 왜 이렇게 밝은 말을 했어요. 반면 최근에 어떤 메시지가 왔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내 모습을 지켜보는 게 참 좋다는 말을 들었고요. 그때 이게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살아가면서 증명해야 하는 일. 단지 잘 사는 거.
효진 사람들이 많이 오해하는 거 같아요.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같은 것들에 대해서 항상 울고 불안해하는 것만이 병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죠. 그래서 밝음과 어두움의 차이가 내게는 더 큰 것 같아요. 얼마나 밝고 어두운지 모르니까, 밝은 상태를 기꾸로 더 잘, 오래 지켜내야 하죠.
수진 우울증에 대한 시선도 참 다양하잖아요. 저는 우울증을 겪고 있다는 말을 쓰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서 인스타그램에 글을 적은 적이 있어요. 물론 그러는 동안 수영도 하고 친구들을 만나 술도 마시고 많은 걸 했죠. 밖에서는 웃고 지내더라도 집에서는 그것과 다른 내 모습이 있기도 하니까요.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닌데 이런 나를 이해받지 못한다는 기분이 몰릴 수 없더라고요. 인스타그램에 나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으니 지웠다가 깔기를 반복했거든요. 내 주변에 편협한 시선을 가진 사람들보다는 그렇지 않은, 좋은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고 생각해요. 현경이 ‘내 주변에 너무 좋은 사람이 많아서 나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을 한 적 있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작업 이후 나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요?
현경 아까 말했지만, 어떤 사전을 얻은 기분.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굉장히 얻기 어려운 마법의 사전. 귀엽고 의미 있는.
효진 잘 살아왔다는 증거를 마련한 것 같아요. 처음으로 적어보는 책이라서, 내 우울이 글이 되었다는 사실에 뿌듯합니다.
종길 저도 둘과 비슷해요. 사전이나 증거라는 표현도 그렇고. 얼마 전 여러모로 컨디션과 상황이 안 좋다 보니, 기분이 많이 다운되고 있었는데 그때 원고를 봤어요. 그러니 기분이 꽤 나아지더라고요. 생각보다 많이 해소됐어요. 제게 그랬고 누군가에게도 이 책이 언제든 펼쳐볼 수 있는 무언가가 되었으면 해요.
수진 사전이라는 표현과 비슷한 말로 제게는 10대 때부터 기록한 ‘인생해설지’가 있는데요. 이 경험 자체가 그곳에 추가될 것 같아요. 저의 해설지란 정답은 아니더라도 나만의 깨달음이나, 기억하고 살아가겠다 싶은 것을 입력해 두는 곳이거든요. 이 경험이 잘 기록될 것 같아요. 살면서 힘든 순간이 올 때, 제가 다시 들춰보는 날이 있을 테니까요.
특히 추천하고 싶은 각자의 균열 내는 방법이 있다면? 선택한 이유는?
현경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되뇌기’입니다. 불교 사상에 보면 ‘고집멸도’라는 말이 있어요. 이게 뭐냐면, 고통은 집착에서 오고 도를 통해 이것을 멸한다는 뜻이에요. 돌이켜보면 집착하는 것으로부터 우울의 시작이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쉽게는 삶이나 행복 그 자체에 집착하는 일도 고통을 일으킨다고 생각하고, 돈이나 명예 같은 것들도 있고요. 사랑, 사람, 내 멋대로 안되는 것들이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게 나한테는 너무 어려웠어요. 그런데 그것들을 놓고 극복해나가고 생각을 하니까, 많은 것들이 나아졌어요. 제 인생 모토입니다.
수진 나는 내가 태어난 이유에 너무 집착하면서 살아온 것 같아요. 우울할 때 그런 생각을 너무 많이 하다 보니까 ‘왜 살지?’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오고. 그런 식으로 집착과 연결되는 것 같아요.
효진 저도 나의 쓸모에 대해서 집착했던 것 같아요. 나는 쓸모가 없네, 그럼 필요가 없네, 이런 생각이 되어버리는 거죠. 그럴 때 조금 내려놓고 더 놀 걸 그랬어요.
수진 저는 첫 번째로 쓴 글인 ‘손톱 깎기’입니다. 그것만으로도 많은 걸 해낼 수 있는 것 같아요. 나를 가꾸는 일도 포함되어 있고, 깨끗해진 손으로 할 수 있는 행동으로 이어지고요. 저는 손톱 끝에 흰 부분이 보이면 바로바로 잘라요. 계속 그걸 생각하려고요. 추가로, 바셀린을 손에 발라주면 손톱이 아주 반질반질해져요.
종길 저는 ‘사랑하기’입니다. 이유를 말할 게 있을까요. 사랑만이 정답입니다. 다들 알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사랑이 연인에 대한 사랑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 나 자신, 앞서 말한 내 손톱 가꾸기, 길가에 피어난 꽃들까지도 모두 포함하는 말이죠. 언제나 어디서나 늘 말하고 싶은 거예요, 사랑하기.
효진 저는 ‘누워서 킁킁 주변의 향만 따라가기’인데, 외국에 살면서 정말 힘들었을 때 상담사 선생님께서 추천해 주신 방법이에요. 몸으로 아무것도 못 할 때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거든요. 가장 쉬운 방법이라 추천하기도 하고, 제가 가장 아팠을 때의 일이라 많이 기억나기도 해요.
이 책이 어떤 사람에게, 어떤 순간에 닿기를 바라나요?
현경 최근에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어린 친구랑 대화를 했는데 그 친구가 자신은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어요. 그는 우울증 환자고, 마치 나의 어릴 때를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좋지 않았어요. 그런 친구들한테 넌지시 이 책을 건네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이런 레시피가 있다고. 편한 선물이 되면 좋겠어요.
효진 저도 그 말에 공감해요. 편한 선물이 된다는 것. 우울에 빠진 사람에게는 말 한마디도 어려운 것 같아요. 제가 그런 상태일 때도 주변에 당사자에게 날카로운 말이 될까 봐 조심스럽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거든요. 그럴 때, 어떤 말도 없이 조심스럽게 이 책을 건네는 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수진 앞선 두 사람이 타인에게 닿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으니, 저는 이 책이 언젠가 우리가 다시 힘들 때 우리에게 닿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병원에 다시 다니면서, 우울은 ‘감기’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재채기 같은 거 알레르기 반응 같은 거요. 지금 다시 조절할 수 있지만, 살면서 또 어떤 상황에 부딪혀서 다시 힘들어질지는 알 수 없으니까요. 그때의 나에게, 우리에게 닿는다면 좋겠어요.
현경 감기보다는 당뇨 같은 거 아닐까요.
수진 감기 같다는 표현은 그만큼이나 자주 올 수 있기 때문에 쓰이는 것 같아요. 그런데 지병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종길 어떤 책에서 읽고 몇 달 동안 마음속에서 품고 있는 단어가 하나 있어요. 바로 ‘생존자’라는 표현이에요. 여러 사건 사고로 인해 주변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어떤 의미에서 우리도 생존자이고, 우리의 주변 사람들의 다수가 생존자라고 말할 수 있죠. 그래서 가깝고 먼 의미를 아우르는 생존자 모두를 위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좋겠고요.
대화를 마무리하면서 한마디 한다면요?
현경 뭐랄까. 이 책의 기획 단계에서는 이런 사람들이 모여 이런 걸 만들게 될 줄은 전혀 몰랐어요. 같이 아트북을 만들고 시작을 했는데… 되게 결이 맞는 사람들이 모였구나 싶어요. 아마 각자가 자신만의 아픔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겠죠. 이런 내용을 글로 써내면서 말하지 않은 어려움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힘들었던 시기가 생겨나서 그럴 수도 있겠고, 글 쓰는 과정 자체가 힘들어서일 수도 있겠고. 저는 개인적으로 어렵지는 않았지만 그때를 복기하는 것 자체가 좋지만은 않았거든요. 그럼에도 이런 프로젝트가 누군가에게 무해한 선물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내지 작업을 하고 표지 작업도 하고 난 뒤에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기대됩니다. 좋은 피드백이 오면 너무 기분 좋을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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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길 마지막 에필로그 작업을 하면서 이 책의 제목이 “세상에서 가장 찬란한 네 사람의 일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둠은 다시 찾아올 테지만, 당신을 비추는 밝음을 느끼고 즐기는 날이길 바랍니다. 부디 눈부시게 살아가요.